“오늘은 좀 색다른 데 가볼까?”
평소라면 망설였겠지만, 그날따라 내 친구들이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정자동 룸싸롱 문 앞에 서 있었다.
왠지 모르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영화 제목은 ‘망신의 밤’이었지만.
입구부터 뭔가 범상치 않았다.
직원이 능숙하게 룸으로 안내하며 묻는다.
“기본룸이 편하실까요? 아니면 VIP룸으로 가시겠습니까?”
친구는 주저 없이 말했다.
“VIP로 가야지!”
순간 나는 계산기를 머릿속에 두드렸다.
VIP라니, 이자카야 10번은 갈 돈이겠지.
하지만 이미 내 발은 룸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모든 후회는 문이 닫힌 뒤에 찾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로
화려한 안주 세트와 술병들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금빛 레이블의 위스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한 병에 내 월세 반은 되겠다.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병을 따며
“오늘만 사는 거야!”를 외쳤다.
그때 이미 이 밤의 엔딩이 예상됐다.
그리고 드디어, 이 룸싸롱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직원이 문을 열자
아홉 명의 미소녀(?)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친구는 마치 오징어게임 참가자처럼 두리번거리더니
한 명을 가리켰다.
“저분이 좋겠어요.”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머뭇거리며
“그냥… 아무 분이나…” 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아무분’이 참 인기 많으세요.”
그녀는 정말 스스럼없이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첫마디.
“어색하시죠? 오늘 처음이세요?”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술이 돌자 친구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한 곡 불러! 오늘은 다 내려놔야 해.”
나는 이미 절반 취기가 올라 있었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버즈 – 가시’를 열창했다.
그런데 옆자리 그녀가 귓속말로 말했다.
“되게… 독특하게 부르시네요.”
그 순간, 내 심장은
오징어게임 탈락자처럼 내려앉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박수치며 환호했다.
나는 그렇게 ‘룸싸롱의 음치’로 등극했다.
즐겁게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
직원이 계산서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내가 본 순간,
숫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0의 개수만 보였다.
이건… 2박3일 제주도 여행 비용 아니야?
나는 친구를 노려봤다.
“이거 다 네가 시킨 거잖아!”
친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미소만 지었다.
결국 우리는 네이버 페이, 현금, 카드까지
온갖 결제수단을 총동원해 계산을 끝냈다.
밖으로 나오자,
새벽 공기가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
택시 안에서 친구가 중얼거렸다.
“야… 그래도 재밌긴 했지?”
나는 말없이 창밖을 보다가
작게 대답했다.
“응… 근데 다시는 안 간다.”
그날 이후,
정자동 룸싸롱은 우리 사이에
전설의 흑역사로 남았다.
✅ Tip
혹시라도 룸싸롱에 가게 된다면,
VIP 룸 선택은 신중히,
계산서는 반드시 선불 견적 확인 후에 서명하세요.
그리고 노래는…
될 수 있으면 부르지 마세요.